이탈리아 여행을 하는데 로마에서 열흘, 피렌체에서 사흘을 보냈다. 누군가 피렌체와 로마를 여행한다고 하면 로마-피렌체 순서가 아니라 피렌체-로마의 순서로 여행을 하라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로마는 진짜 모든곳의 모든것들에 압도당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러고 나서 피렌체에 오면 감동이 많이 줄어든다. 처음 봤으면 감동했을 것들도 로마를 보고 오면 아무래도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드시 피렌체-로마 순서로 관광할 것을 추천.
하지만 피렌체에서 밖에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바로 르네상스의 예술 작품들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교과서나 TV에서나 어디서든 보았던 경험이 있는 작품들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음악으로 치자면 비틀즈의 렛잇비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누구나 알고 있는 비틀즈,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는 렛잇비. 약간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역시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을 듯 하고.
피렌체에 가서 여기저기 걸어다니다 보면 하루 몇 번씩 마주치게 되는 두오모 성당. 이 성당은 성당 외관을 꾸미는데 온 정성과 자본을 다 투자했는지 겉모습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안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이 너무 썰렁해서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 2019년 9월에 갔을 당시에는 테러 방지를 위해서인지 성당 안에서 짐 검사를 하느라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제한이 되어서 하루 종일 성당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할 거다. 지금은 시스템을 바꿨나 어쨌나 모르겠는데 같은 상황이라면 시간 없으면 안은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두오모는 외관이 중요하니까.
또 한가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두오모 성당 건너편에 산 조반니 세례당이 있는데 여기 로렌초 기베르티가 제작한 천국의 문이 있다. 미켈란젤로가 절찬한 것으로 유명한 문. 근데 이거 복제품이다. 진품은 두오모 성당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여기까지 와서 복제품 보면서 만족하거나 그러지 말고 박물관에 가서 진품을 보도록 하자. 이 외에도 두오모 성당 외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도 모두 진품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박물관에서 인상깊었던 작품 중 하나는 도나텔로의 마리아 막달레나의 조각품이었다. 정면에서 보면 순례를 하는 사람 모냥으로 이렇게 말라 있고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잘 구분이 안가는 모습. 볼이 홀쭉하고 눈이 퀭한 것이 인상적이다.
근데 옆에서 보고 막달레나 팔 근육에 깜짝 놀랐다는 사실. 그냥 순례하느라 지치고 바싹 마른 사람이 아니라 잔근육이 튼튼한 막달레나라는게 인상깊었다. 퀭하고 힘없이 보였던 인상이 옆에서 보니까 뭔가 든든하게 느껴진다.
피렌체에서 처음으로 간 미술관은 아카데미아 미술관. 미켈란젤로는 만들다 만 조각품들도 많은 듯 한데 아카데미아(미술 학교)다 보니 만들다 만 조각품들도 이곳에 전시해두고 있고 뭐니뭐니해도 그 유명한 다비드상이 여기에 있다. 맨날 다비드상만 봤지 사람이랑 같이 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큰 줄 몰랐다. 가까이에서 위를 올려다 보면 손이 비정상적으로 큰데 이건 이렇게 가까이서 보라고 만든게 아니라 멀찍이 떨어져서 보라고 만들어진게 분명하다.
이렇게 멀찍이서. 가까이서 봤을 때와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이런 것 까지도 다 계산해서 만든 거겠지. 거장 미켈란젤로는.
그리고 반드시 빼먹지 말아야 할 곳이 우피치 미술관. 다들 피렌체 여행하면서 절대 빼먹지 않을 거란 건 아는데 여기 그림이 진짜 진짜 많다. 다 보려면 대여섯 시간은 잡아야 한다. 체력 소모도 장난이 아니다. 근데 보고 나면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이건 그림 보는 거 좋아하는 사람에 한한 이야기다. 그치만 피렌체에서 이런 거 안 보면 뭐 할 게 있겠는가. 제일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체, 라파엘로, 보티첼리로부터 해서 르네상스 시대의 온갖 유명한 화가의 작품은 거의 몽땅 다 모아놨으니 이걸 다 안 보면 진짜 아까운 것. 피렌체가 두 번 가게 될 만한 곳도 아닌 듯 하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렛잇비 1. 보티첼리의 <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렛잇비 2.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근데 사실 이런 유명한 그림들을 보게 되는 것도 좋기는 한데 그보다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는 것도 재미있다. 예를 들어서 지금껏 르네상스 이전의 그림들은 거의 다 종교화라서 뭔가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인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도식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맨날 그리는게 마리아와 아기 예수, 수태 고지, 피에타, 예수의 제자들 등등. 종교화다 보니 같은 주제의 그림들이 끊임없이 그려지지 않았겠는가. 근데 이렇게 이 시대의 그림을 몽땅 모아놓은 곳에 가서 보다 보니 화가들이 같은 주제의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 속에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무지하게 노력했다는게 눈에 보이는 거다. 하긴 같은 주제를 그리니까 그중에서 튀려면 더더욱 아이디어를 짜내야만 했을 거다.
예를 들어 수태고지를 살펴보면 어떤 그림은 이런식으로 천사가 무릎 꿇고 고지를 하고 마리아는 뭔가 엄근진한 표정으로 옆 눈으로 천사를 째려보고 있다.
요렇게 노려봄. (물론 노려보는게 아니겠지만 노려보는 걸로 보이는 걸 어쩔)
또 다른 수태고지는 위와 같은 근엄한 분위기가 없고 마리아가 깜짝 놀라는 느낌이다. 근엄하다기 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여성이란 인상이 강하다. 천사도 어딘가 부산스럽다. 마리아에게도 천사에게도 동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마리아는 근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의 느낌도 아니다. 뭔가 고귀한 혈통과 교육을 받은 귀족 처녀의 느낌? 아, 그런가 알겠네. 라고 말하는 듯한. 천사도 권위가 있으면서도 마리아에게 무릎은 꿇고 있고 할 이야기를 정확히 전달하는 듯한 느낌? 사진으로는 잘 알 수 없는데 천사 날개가 진짜 예쁘다.
이건 반대로 천사와 마리아의 권력 관계가 반대로 설정되어 있다. 천사는 서서 넌 이러이러하게 될 것이다. 라고 얘기하는 느낌이고 마리아는 무릎을 꿇고 분부 받잡겠나이다. 뭐 이런 느낌?
수태고지중에 제일 맘에 들었던 건 산 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온화한 분위기도 그렇고 서로에게 몸을 조금씩 기울이고 얘기하는 모습도 맘에 들고 제일 맘에 든 그림이다. 무엇보다 이 그림이 놓여있는 곳.
아래에서 계단을 올라가면 이렇게 이 수태고지 그림이 점점 보이게 되어 있다. 이 그림이 보이는 순간 "와..."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림은 그림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걸 어디에 어떻게 놓아두는 가도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되는 순간.
이렇게 전혀 관심도 없고 잘 모르던 것이라도 이런 저런 그림들을 감상하는 중에 알게 되고 찾아보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경험은 여행을 하는 또 다른 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피렌체에는 피렌체 카드라는게 있는데 3일동안 사용할 수 있는 카드다. 꽤나 비싸서(85유로) 망설이게 되기는 한데 3일 이상 피렌체에 있을 거고 예술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아주아주아주아주 강추하는 카드다. 로마 패스는 처음 한 두 시설만 무료고 나머지는 할인을 해준다던가 하는 혜택밖에 없는데 피렌체 카드는 그냥 몽땅 이 카드 하나로 모든 시설들을 다 이용할 수 있다. 피렌체의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의 입장료가 비싸서 3일이면 충분히 85유로 다 뽑고도 남는다.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이걸 사버리고 나면 뭐든 하나라도 더 보지 않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라서 진짜 열심히 3일 내내 돌아댕기면서 이거 저거 몽땅 다 보게 된다는 거. ㅋㅋ 강제 교양 활동행.
마지막으로 좋아하게 된 화가의 그림. 브론찌노라는 화가이고 인물화들을 많이 그린 것 같다. 다음은 메디치가의 인물들. 어두워서 잘 안보이는데 오른쪽 아래 강아지가 있다. 귀엽.
이것도 메디치가의 여성. 인물화를 예쁘게 잘 그리는 듯.
그리고 또 진짜 좋아하게 된 화가. 필립포 리피(Filippo Lippi, 1406-1469) 수도사 화가라고 하는데 이게 15세기 종교화이기는 할 건데 마리아가 진짜 예쁘다. 아니 이 시기쯤의 종교화들은 도식적이고 딱딱하고 그런거 아니었나? 어째서 이렇게 예쁜 마리아와 아기 예수와 요한이라니. 요한 표정도 깜찍.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데 피렌체는 예술 작품이 중요하다. 이거 다 못보고 떠나면 일생의 후회. ㅋㅋ
베르니니를 보러 가자-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로마에서는 아주 희한한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불편함과 불쾌함을 잊게 되는 경험이다. 지난 포스팅에서 로마 패스의 달라진 점들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로..
fantasticjourney.tistory.com
고대 로마의 생활을 엿보자-로마 국립 박물관 마시모 궁전
로마 여행 계획을 짤 때 마시모 궁전에 있는 로마 국립 박물관은 사실 그렇게 우선 순위에 있는 곳은 아니었다. 로마는 워낙에 볼 것이 많아서 자신의 취향을 잘 생각해서 계획을 짜야 하는데 로마 국립 박물관을..
fantasticjourney.tistory.com